‘나홀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전력기자재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원화 강세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진행되면서 전력기자재 업계를 비롯한 국내 주요 산업의 수출경기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원화절상 추세가 무역수지 흑자 기조, 국제 신용등급 상향 등 경제 펀더멘탈이 호조세를 타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출 기업들은 환율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으로 자금 조달에 곤란을 겪는 동시에 주요 수출 경쟁국인 일본·중국 등과의 경합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원화 강세는 글로벌 무대에서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다수 기업들의 전망이다.
이는 내수 침체가 최근 몇 년간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수출을 돌파구로 삼고 있는 전력기자재 업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최근 원화 강세가 전력기자재 업계에 미치는 영향과 업계별 대응 방안을 살펴봤다.

◆변압기
최근의 원화 강세로 변압기 업체들의 수출전선에도 비상이 걸렸다.
관수와 민수시장이 침체되면서 최근 몇 년 간 중소 변압기 제조업체들이 해외영업에 공을 들이고 있던 찰나여서 환율하락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변압기 수출기업들은 이미 ‘팔면 팔수록 손해’인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 한 해 20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A사는 계속된 환율하락으로 매출감소가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사 대표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매출액이 10억원 이상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올해 경영계획을 세우면서 최대 환율하락치를 1080원선으로 정했는데, 이보다 환율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면 수출 목표치를 전면 수정해야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달러 대신 유로화나 원화 등으로 결제하는 비중을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원·달러 환율 급락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국내 기업의 진출 비중이 높은 국가와 거래하는 업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을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로 수출을 시작한 B사는 환차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B사 사장은 “동남아나 중국의 경우 현지 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는 등 환율하락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 지역은 아직까지 ‘무조건 달러’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어 조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수주 분을 제외하고는 당분간 환율변동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해외영업을 최소로 줄일 계획”이라며 “수입원자재 가격 하락분으로 흡수할 수 있는 손해정도를 파악하고, 올해 기준 환율을 1050원선이라고 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수출적자 규모를 조사하는 등 내부적으로 환율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전기
발전기 업계는 기본적으로 공식 환율보다 가격을 낮추는 수출 전략을 펴고 있다. 또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거나 환율 변동에 대한 조건을 계약 조건에 포함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저환율 시대를 헤쳐가고 있다.
발전기 제조업체 C사의 경우 연초 세웠던 환율 전망을 전면 재검토했다. 환율이 1070원선은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1050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1050원선도 위태로운 상황이라 기존의 수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C사 임원은 “원·달러 환율이 1070원대는 지켜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깨졌다. 현재 환율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예측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1050원선이 무너지면 1000원까지도 떨어질 수 있어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아직 저환율 추세에 따른 타격이 크지는 않다. 수주 물량 중 계약부터 납품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발전기의 특성상 계약 후 납기까지 보통 2~3개월 정도는 소요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리스크 관리는 필수적이다.
이에 C사는 기계약 업체들과 납품 가격 상승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발주자들이 환율에 따른 가격 상승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손실을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결제 통화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C사는 일부 유럽산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 원화나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유로화로 받는 등 다양한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공식 환율보다 저가로 납품하는 전략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2~3개월 뒤의 환율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아 이익률은 떨어져도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저가 정책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은 타 발전기 업체들도 사용하고 있다.
수출이 매출의 50%를 넘는 D사는 지난해부터 원·달러 환율을 1080원으로 고정해 수출 단가를 산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준을 1050원으로 낮추는 등 환율 변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 EPC 등을 통한 3자 수출이 많기 때문에 원화 결제 비율이 높고, 대용량보다 소규모 제품을 많이 취급해 상대적으로 손해가 덜하다.
D사의 임원은 “환율 하락에 따라 이익률에서 약간의 손해는 있다”며 “하지만 제품 하나의 가격이 몇 만 달러 정도로 적어 최근처럼 환율이 널을 뛰어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일본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E사는 발주자와 계약 당시부터 환율 손실을 보상키로 약속해 손실을 최소화했다.
이 업체는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 증감을 보전하는 문구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통상 2~3% 정도 선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발주자와 납품업체가 서로 보전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원화 가치가 상승한다면 납품자의 손실을 보전해주고, 엔화 가치가 상승한다면 납품 기업이 발주자의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E사 대표는 “환율로 인한 악영향은 분명히 있지만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며 “환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유동적인 가격 조건을 제시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승강기
일본에 엘리베이터를 수출하는 F사는 최근 급락한 엔화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400~1450원대에 머물던 엔화 환율이 한때 1180원대까지 떨어져 작년 4분기에 계약한 제품을 수출할 때 15~16%의 손해를 입었다.
일반적으로 엘리베이터 한 대의 가격이 최소 1000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건 당 150만원 이상 손해를 본 셈이다. F사는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70~80%에 이른다. 이 중 대일 무역은 전체 수출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 타격은 더 컸다.
F사 대표는 “이미 올해 경영계획을 세우며 예상했던 환율 목표치가 빗나가 벌써 15%정도 매출손실이 발생했다”며 “환율이 이렇게 급격하게 떨어지면 중소 수출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의 G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지난해 상반기 계약 당시 1150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현재 1050원대로 떨어지면서 3억원 상당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졌다고 수출 가격을 올리면 현지 업체와의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며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G사는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해 올 상반기에 1050원, 하반기에는 1000원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세울 예정이다.